우리 전북대학교 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에서는 아젠다 관련 연구 논의의 장으로서 “인문의 창”을 개최합니다. 이번 '인문의 창'에서는 폭넓은 고고학적 시각과 벼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인류사에서 벼의 기원과 전파를 다루고 벼 재배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입니다.
제7회 인문의 창은 다음과 같이 개최됩니다.
○주제: “벼는 언제부터 재배되었는가” - 쌀의 고고학 - ○일 시 : 2010년 5월 19일 11시 ○장 소 :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2층 교수회의실 ○발제자 : 안승모 교수(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이번 행사 관련한 발제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야생벼는 자연적 산포 특성의 감소, 낟알 크기나 무게의 증가, 발아 억제 기간의 감소, 수확에 유리한 형태로의 이삭 형태 변화를 거쳐 순화종으로서의 재배벼로 전환된다. 애초 수렵채집민이 그들의 식료에 야생벼를 편입한 후, 야생벼의 무위식적, 의식적 증식을 거쳐 재벼벼 형질이 점진적으로 고착되고 동시에 식료에서 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도작농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즉 재배벼 출현과 기원지의 전제조건은 첫째 낟알이 열리는 야생벼가 주변에 서식하여야 하고, 둘째 야생벼를 식료에 편입하여야 하며, 셋째 낱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열성의 비탈립유전자가 선발되고 동시에 벼의 재배지가 야생벼 서식처로부터 떨어져서 야생벼 유전자의 유입이 효과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재배벼와 도작의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유적에서 부유선별(flotation)로 벼를 포함한 식물유체를 검출한 후, 벼가 야생종인지 재배종인지 과학적 동정을 거치고 동시에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하여 벼 유체의 정확한 연대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거쳐 중국의 양자강 중하류 유역이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지로 밝혀지게 되었다. 열대-아열대 원산인 야생벼가 서기전 15,000년 이후의 온난한 만빙기에 양자강 유역으로 확산되면서 초지의 축소에 의해 사냥감이 줄어든 수렵채집민이 야생벼를 식료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야생벼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중국학자들은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서구학자들은 부정적이다. 야생벼와 재배벼를 구분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인 낟알이 떨어지는 부위(소수축)에 대한 최근 연구를 보면 1만년 전 홀로세로 들어선 이후 비탈립성의 재배벼 형질이 출현하기 시작하고 이후 비탈립성 형질이 수천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서기전 4천년 무렵에야 재배벼로의 생물학적 순화가 완료되고 인위적인 수전도 개발되었다. 기원전 3~2천년기에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확산되면서 재지의 보통야생벼(특히 일년생) 유전자가 혼입되고 재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재배벼의 다양한 아종과 변종이 출현하게 되었다. 도작은 남쪽으로의 전파와 비슷한 시기에 회하 북안과 산동ㆍ요동반도 쪽으로도 확산되었다. 한반도에는 청동기시대에 잡곡(조, 기장), 두류(콩, 팥), 맥류(보리, 밀)와 함께 벼가 재배되는 농경사회로 전환되었다. 일각에서는 청원 소로리벼를 증거로 우리나라도 재배벼 기원지의 하나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며 신석기시대 도작 역시 아직은 결정적 증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