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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953회 작성일 15-02-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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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전지-두류신도.jpg : 지리산권문화연구단 제15호 소식지 '지리산인2015.02 지리산소식 - <지리산 칼럼>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담은 <두류전지>

지리산 칼럼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담은 <두류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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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철(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HK교수)

산지라고 말하면, 흔히 산지(山地) 혹은 산지(産地)라는 단어를 떠올릴 뿐 산지(山誌)를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 용어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산지(山誌)는 어떤 산과 관련된 지리ㆍ유적ㆍ문학 작품ㆍ역사사건 등을 체계성 있게 구성하여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편찬된 책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통시대에 편찬된 산지는 지리산의 <두류전지>, 청량산의 <청량지>, 주왕산의 <주왕산지> 3종이 있을 따름이다. 필자는 이 3종의 산지를 ‘조선시대 3대 산지’라 명명하고 싶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3대 산지’ 가운데 하나인 <두류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길 원한다.

<두류전지>란 어떤 책일까?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에서 따온 ‘두류’, 완전할 전(全), 기록하다는 의미의 지(志)자가 합쳐져 <두류전지>라는 책명이 되었다. 종합하면 두류산(=지리산)에 관한 완전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지(志)’자는 ‘지(誌)’와 통용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기록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편찬자는 왜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놓아두고 두류산이라는 명칭을 제목으로 삼았을까? <두류전지>에는 산의 이름과 관련해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의 여러 산이 되고 두류산에 이르러 그 흐름이 다 했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유맥(流脈)이라는 의미로 두류(頭流)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혹은 백두대간의 유맥이 바다를 만나 멈추게 되었으므로, 두류(頭留)라 일컫기도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지리산의 지이(智異)는 ‘지혜가 기이하다’는 뜻인데, 아무리 견고한 번뇌라도 깨뜨릴 수 있는 반야지(般若智)에서 반야봉의 이름이 유래했듯이 지리산이라는 명칭도 불지(佛智)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해놓았다.
편찬자가 책명을 ‘지리전지’라고 하지 않고 ‘두류전지’라고 삼은 이유는 지리산을 백두대간의 마지막 종착지로 파악하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인식은 단순히 책명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이 우리나라의 국토에서 가지는 지리적 의미를 하나의 인격체에 비유하여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대간은 ‘조종(祖宗)’이라 표현하고, 흘러가는 산줄기는 ‘자손(子孫)’이라 불렀으며, 이웃의 산들은 ‘족당(族黨)’이라고 일컬었다. 지리산을 한 지역에 고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우리나라 국토 전체의 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그 흐름을 이어받고 이어주는 거점으로 파악한 인식은 매우 독창적이고 탁월하다. 게다가 그런 통찰을 <두류전지>라는 산지를 통해 체계성 있게 정리하고 표현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다.
<두류전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 정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런 책을 누가 만들었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편찬자는 1823년 무렵 소촌역(현재 경남 진주시 문산읍에 소재했던 역)에 찰방으로 부임한 청산(淸山) 김선신(金善臣, 1775- ? )이라는 인물이다. 찰방은 요즘의 역장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당시 소촌역이 관할한 구역이 마산ㆍ고성ㆍ통영ㆍ거제ㆍ사천ㆍ남해의 해안과 진주ㆍ사천ㆍ의령 등 남강 수계(水系)에 걸쳐 있는 범위인 점을 생각하면 매우 광범위한 지역을 관리하는 직무이다.
아직까지 학계에서 김선신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 인물에 대한 최초의 보고는 추사 김정희 연구의 선구자인 등총린(藤塚鄰, 1879-1948)에 의해서이다. 그는 김선신에 대해 “일본 유학자들 사이에 이태화와 나란히 명성을 떨친 영재로 유명하며, 특히 미야케 기츠엔 같은 학자는 그에게 자신의 저술에 서문을 청할 정도로 높이 보았다.”라고 서술했으며, “<두류전지>라는 규모가 큰 저술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등촌린이 판단하기에 김선신이라는 인물은 주목을 요하는 대단한 학자이며, 그가 편찬한 <두류전지> 역시 큰 가치가 있는 저술로 평가했다.
그러나 등총린이 언급한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나도록 김선신과 <두류전지>에 대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전통시대에 지리산을 대상으로 편찬된 유일한 산지이며, 조선시대 3대 산지로 거론할 수 있을 만큼 귀한 저술인데도 불구하고, <두류전지>는 우리의 관심 밖에 벗어나 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었다.

김선신이 <두류전지>를 지은 까닭은?

그는 왜 이 책을 편찬했을까? 서문이나 발문을 통해 편찬 동기와 경위를 밝혀놓았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불행히도 김선신은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다. 따라서 여러 가지 근거와 정황에 근거하여 추론하는 방법으로 그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결론을 간추리자면, 필자는 김선신이 1823년 무렵 2년간 소촌역 찰방을 지낼 때 <두류전지>를 편찬했다고 판단한다. <두류전지>에 인용되어 있는 방대한 자료는 한 개인이 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그리고 하동군 월운리에 거주하며 지리산에 관해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류혁규라는 지역 주민에게 자문을 구한 점을 볼 때, 김선신은 <두류전지>를 편찬하기 위해 문헌 자료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사실 확인도 함께 진행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김선신이 이 책을 편찬한 까닭은 자신이 담당하는 구역에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을 이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저술을 편찬하겠다는 공적 사명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유추된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지리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금강산과 지리산 중에 어느 산이 더 뛰어난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김선신은 우리나라 산들 가운데 빼어난 경치는 금강산이 최고이며, 웅장한 모습은 지리산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금강산보다 지리산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지리산은 몸체가 커서 신령스러우며, 이곳에서 온갖 약초와 과일을 생산한다. 그래서 주변의 고을 사람들이 여기에 의지해 생활하기 때문에 베푸는 혜택이 매우 넓다. 이에 비해 금강산은 널리 알려져 사람들의 손에 모든 곳이 훼손되어 초목은 살 수 없고 짐승은 숨을 곳이 없다. 산 속에는 거주하는 백성이 없고 산 아래에는 밭이 없으며, 혜택을 줄 수 있는 자원이나 식물이 드물다.
그렇기에 그는 지리산의 묵묵함을 배울지언정 금강산의 찬란함을 본받지 말며, 지리산의 엄숙함에 처할 것이지 금강산의 깨끗함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권했다. 또한 금강산을 재주 있는 선비에 비유하고 지리산을 덕스러운 노인에 빗대어 금강산의 빼어남보다 지리산의 덕스러움을 칭송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언급을 보더라도 그가 지리산을 마치 훌륭한 인품을 가진 인격체처럼 경모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의 자연지리와 문화유산을 집대성한 <두류전지>

<두류전지>는 상하 2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권의 첫 부분에는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까지, 그리고 지리산에서 흘러간 여러 산들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을 보여주는 2장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어서 이와 같은 자연지리의 정보를 글로써 서술한 내용이 5편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고을들을 소개한 1편, 빼어난 명승지를 선별하여 정리한 1편, 지리산권에 소재한 사당ㆍ서원ㆍ누정을 기록한 1편 등 3편이 구성되어 있다.
하권에는 지리산권에 소재한 사찰들의 현황을 기록한 1편, 역사 사건과 유적을 정리한 1편, 지리산의 곳곳에 남겨진 문학 작품을 채록한 1편, 이전까지 서술한 내용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1편, 지리산 관련 설화나 이야기를 수집한 1편 등 5편이 편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지리산 둘레의 고을들을 그린 지도 1장이 부록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전지>는 상하 2권 총 13편의 내용과 3장의 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두류전지>, 200년의 침묵을 깨고 지금 우리와 만나다.

등총린이 <두류전지>를 대단하게 평가한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김선신이 1823년 무렵 소촌역 찰방을 하던 때에 <두류전지>를 편찬했다고 추정한다면, 200년 가까이 이 책은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책에 대한 연구를 힘차게 진행하려고 한다. 우선 올해에는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두류전지> 번역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한문학ㆍ설화ㆍ사찰ㆍ누정ㆍ자연지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두류전지>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들이 뜻 깊은 열매로 맺어지길 소망한다. <두류전지>가 역사의 저편에서 걸어 나와 지리산처럼 우뚝한 저술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맑은 눈빛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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