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함양장터 3·1운동 만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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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장터 3·1운동 만세시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831 일대)
1919년 3월 28일 정순길·윤보현 등이 주도하여 만세시위를 벌인 곳
전국적인 3·1운동의 파급과 함께 함양면에서도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이 함양면에서 만세시위를 3월 28일 함양장날에 행하기로 결의하고 동지규합과 시위준비에 나섰다.
3월 28일 오후 3시 경 수천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경찰의 감시가 누그러들자 주도자들은 준비해 온 태극기를 장터 한복판에 세운 후 작은 태극기를 재빨리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들의 선창하는 독립만세 소리에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자 일제 경찰들은 총검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주동자들을 연행해갔다. 이에 시위대는 그들이 끌려간 일본군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4월 2일의 시위는 김한익(金漢益)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정오 경이 되자 장터에 3,000여 명이 밀집하였는데, 이때 그는 장터 중앙에 쌓아놓은 소금가마니 위에 올라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니 운집한 군중이 일제히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에 일본군이 몰려와 김한익을 검거하자 군중들이 다시 헌병분견소로 몰려갔다. 이때 유혈사태가 벌어져, 하승현(河昇鉉)·하재연(河在衍)·하재익(河在翼) 등이 총탄에 맞았다.
두 차례의 함양장터 시위로 검거된 주동인물 중 윤보현은 8개월, 김한익은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 받아 대구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시장의 구조는 그대로이나 도로 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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