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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문화연구단 소식지 13호 '지리산인 2014.08' 지리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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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829회 작성일 14-08-0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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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정성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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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진(경상대 순천대 인문한국사업 부단장,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장)

내가 사는 방목의 석대마을은 봄이 되면 꽃 잔치가 벌어진다. 청매와 홍매, 그리고 설중매 등 매화꽃을 위시하여 노란 산수유가 이곳을 꽃대궐로 만든다. 우리 집에도 작년에 심은 수선화가 꽃과 향기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그루의 매화가 피어 집안 가득 꽃향기가 넘쳐난다. 홍매는 지난 해 열매가 많이 열렸던 것을 그대로 두었더니 올해는 꽃이 시원치 않지만, 청매는 작년보다 훨씬 많이 피어 보기에 너무 좋았다.

삼 년 전 이곳을 집터로 정하고 처음 땅을 샀을 때만 해도 우리 집 매화가 올해처럼 멋지게 자라고 예쁘게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도 주변의 많은 땅들이 그렇듯이 몇 년씩 손을 대지 않고 묵혀두어 갈대를 비롯한 잡초들이 너무 우거져서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였다. 그래서 심은 지는 제법 되었지만 매화나무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새까맣게 거의 말라 죽어가는 형상이었다.


집터를 가꾸면서 캐내고 다시 심자는 집사람의 성화를 달래면서 심어져 있는 매화를 가능하면 그대로 두고 밭도 가꾸고 약간의 정원도 꾸몄다. 그리고 매화나무 주변의 풀을 제거하고 거름도 주었다. 그랬더니 이듬해에는 곧 죽을 것 같았던 나무에서 새싹이 나와 자랐고, 가을에는 그간 전혀 손을 대지 않아 들쭉날쭉 자란 가지들과 웃자란 가지들을 잘라내기까지 하였다.

지난해에는 나무가 제법 모양도 갖추고 시커멓던 껍질도 벗겨지면서 생기가 돌았다. 지금 이렇게 모양이 잡히고 꽃이 피기까지는 삼 년 정도 걸렸다. 나와 아내가 꽃과 나무를 키우면서 매화를 이렇게 가꾸게 된 것은 무슨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농사를 직접 지어보거나 한 적이 없고, 집사람은 더구나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의 농() 자도 알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과 나무를 잘 살릴 뿐만 아니라, 모양도 제법 낼 줄 알아 어떤 사람은 마치 전문가가 전지를 해 놓은 것 같다고 하며,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기까지 한다.


우리가 황무지와 다름없던 집터를 예쁜 정원으로 가꾸고 꽃과 나무, 그리고 매화와 같은 과실수 등을 심어 놓고 잘 가꿀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열정과 나무에 대한 정성 때문이다. 나무 가꾸는 일에 백지인 상태에서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 이외에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전원생활을 하게 된 까닭이 딸의 건강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나는 자연에 묻혀 꽃과 나무를 가꾸며 살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다. 특히 집사람은 꽃 가꾸는 일을 좋아하여, 아파트에서도 집안을 마치 식물원처럼 가꾸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매일 밭에 나가 꽃을 심고 돌보는 재미로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처음 정원을 가꾸기 위해 꽃을 사러 간 농원의 사장이 많은 경우 정원생활이 좋아 시골로 왔다가 거의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꽃을 팔기는 하지만, 마치 행운을 빈다는 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골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이러한 것은 풀을 뽑기를 겁내지 않고, 매일 햇빛을 받으며 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성이다.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꽃도 그렇고 나무들도 생각보다 무척 빨리 잘 자란다. 어떤 나무들은 10년만 자라면 벌써 고목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그냥 잘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잘 자라다가도 하루아침에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무를 사다가 심을 때도 정성을 다하여 심어야 하지만, 심고 난 뒤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부족하지 않게 물도 주어야 하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묶어주거나 돌로 눌러주어야 하며, 제 때 거름도 주어야 하고, 적당히 가지도 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할 경우 농약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을 들여 키운 나무가 하루아침에 말라죽는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원인을 몰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 밑을 두더지가 파놓아서 뿌리가 말라 나무가 갑자기 죽었던 것이다. 두더지는 언제 구멍을 파고 지나갈지 알 수가 없으니, 수시로 살펴서 나무 밑에 두더지 굴이 있으면 꼭꼭 밟아주어야 나무들이 살아난다. 이 정도로 정성을 들이면, 나무들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듯 싱싱하게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나무를 가꾸는 일만 아니라, 사람의 일도 열정과 정성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고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곧 시들해질 것이다. 좋은 조건의 직장이나 어떤 일은 누구나 처음에는 관심도 가고 애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그 일에 대한 흥미가 곧 떨어져 버리게 되어 지겹게 될 것이다.

꽃과 나무를 기르는 일보다 열배 백배 힘든 것이 사람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기를 때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성이다. ‘여보적자(如保赤子)’라는 말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처녀가 시집을 갈 때 어린 아이를 낳고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기르는 까닭은 바로 정성을 들여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인문한국 지원사업의 부단장이란 책임을 맡은 지 이제 일 년이 되어간다. 우리 인문한국 지원사업은 작년만 해도 사업이 계속 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지금도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도 열정과 정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육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정성껏 갓난아이를 돌보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듯이, 정성을 다하여 일을 한다면 우리 경상대와 순천대의 인문한국 지원사업의 앞날도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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