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에는 대하소설답게 270여명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범우 염상구 염상진. 여성만 해도 수많은 개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디 댁’이라는, 거의 보통명사에 가까운 고유명사로 불리우는 그들이지만 성격만은 너무도 분명하게 살아있다. 외서댁, 낙안댁,
아, 그리고 우리의 슬프게 아름다운 무당 소화. 이름만 들어도 생생하게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오랫동안 우리 이웃이었던 사람인 듯이. 아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외면하게 마련인 요즘의 ‘아파트 이웃’들보다 훨씬 더 친숙한 모습으로.
그들은 각기 개성에 넘치고 살아있는 인물형상으로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그 중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좌우대립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지킨 민족주의적 지식인 김범우? 지식인 빨치산 염상진? 슬프고 아름다운 무당 소화? 작가 스스로가 가장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서민영?
 이 모두가 다 주인공의 자격을 갖춘 인물들이다.물론 여기에 정답은 있을 수 없겠지만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의미 있을 터이다.
조정래는 염상구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고 말한다. 다소 뜻밖이다. 그 숱한 매력적 인물들을 다 놔두고 깡패두목이라니. 하지만 염상진-염상구 형제의 갈등이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갈등임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하면서 형 염상진의 시신을 수습하는 염상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10권 333~339쪽). 사실 염상구의 이런 행동은 그 이전에 염상구가 보여주었던 갖은 악행과 비교해볼 때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소위 인물성격의 급전이라는 비판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조정래는 이 급전 이전부터도 그를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인물로 그려왔다. 예컨대 염상구는 어머니 호산댁에게 “엄니, 쌀 됫박이나 퍼갖고 그 집구석 잠 가보고 하씨요. 아새끼덜이야 무신 죄가 있겄소”라고 말하도록 만든다(2권 312쪽). 염상진의 아이들, 즉 호산댁의 손주들을 보살피라는 말이었다. 그 밖에도 염상구에게 인간다운 면모를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도처에서 노력했다. 외서댁을 위해 쌀 열 가마를 주어 살 길을 마련해주기도 하고(6권 172~174쪽), 최서학을 구해주고는 그 답례를 사양하는가하면(7권 231쪽), 남원장 기생 춘심이를 임신시키고도 그냥 벌교를 떠나려던 토벌대장 임만수를 협박해서 위자료 조로 쌀 열 가마니값을 얻어 준다(6권 249~253쪽).
이렇게 볼 때,『태백산맥』에 등장하는 270여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내면적 모순을 강하게 지닌 복잡한 성격을 지닌 것이 바로 염상구라고 할 수 있다. 근느 온갖 악행을 도맡아 하는 깡패두목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왈짜 염상구를 이중적 성격을 지닌 생생한 인물로 만드는 작업은 정밀하고 세부묘사에 주로 힘쓰고 있다. 예컨데 위에서 살펴본 '쌀 열 가마니 값'만 해도 그렇다. 이는 당시 물가로는 조그마한 장사라도 벌일 밑천이 되는 '큰 돈'이었다. 외서댁의 처지를 동정하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네의 살길을 열어준 염상구에 대한 적의를 누그러뜨리게 된다. 자신이 외서댁에게 만들어준 액수를 임만수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설정을 통해서는 그의 공정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뿐이 아니다. 정하섭의 어머니를 등쳐 빼앗아 낸 것이 스무 가마니였지만, "그래도 욕심은 죄의식보다 질겨 외서댁에게 주기로 한 쌀은 결국 열 가마니에 그치고 말았다"(8권 254쪽)는 설정이야말로 주목할만하다. 죄의식과 욕심이 타협점을 찾는 것이, 염상구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가 바로 열 가마니 값이었던 것이다. 인간내면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아닐수 없다. 이런 치밀한 세부묘사에 힘입어 염상구는, 그 이중적 면모를 간직하면서도 작가의 관념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인물로 전달된다.
개인의 내면보다는 역사와 사회에 더 주목해야 하는『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서 이런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닐 터이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한 까닭은 물론 이 인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작품 속에서의 중요성 때문이겠다.
하지만 빨치산활동을 하다가 붙잡힌 소화와 들몰댁을 구출해낸다는 대목(8권 252~263쪽)에 이르면 아무래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개연성에서 다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역할을 염상구에게 맡기는 것이다. 물론 무당 소화의 신통력에 대한 염상구와 남인태의 봉건적 믿음이라거나, 양효석이 민심을 얻고 싶은 마음 등을 길게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하다. 아무리 반공청년단 단장이라도 자신의 친형이 빨치산이라는 점은 늘 그의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었을 노릇이다. 그럼에도 빨치산 소화와 들몰댁에 대해 온정적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하도록 하여 즉결처분을 면하게 해주는 일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것, 그리고 남인태와 양효석이 이를 허락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무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인물에 대한 사랑이 작품의 개연성에 대한 사랑보다 지극했던 탓일까? 이런 정도의 무리라면 서슴치 않겠다는 듯이 작가는 결행한다. 소화를 살려서 정하섭의 아들을 낳게 하여 세대의 이어짐을 보여주겠다는 상징성도 감안했겠지만, 좀더 크게는 결말에서 염상구를 독자들이 미워만 하도록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결말에서 염상구를 시켜서 형의 수급을 거두도록 만들기 위한 예비 작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작가는 벌교깡패 염상구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의 성격을 이중적인 것으로 묘사하며, 그로 하여금 빨치산인 형 염상진의 시신을 수습하도록 하여 결말로 삼는가. 그를 위해서 많은 노고를 하고 심지어는 개연성이 다소 침해되는 일까지도 감수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민족의 화해라는 메시지를 위해서이다. 이념이란 것도 결국 삶과 죽음 앞에서는, 핏줄 앞에서는 무화될 수밖에 없으며, 죽음으로써 염상진은 다시 그의 형이 되는 것이다. 남과 북도 결국 형과 아우의 관계 같은 것이라는 것이며, 휴전선으로 끊긴 태백산맥은 언젠가 다시 이어져야한다는 작가적 믿음의 표현이다. 이는 이미 윤흥길의 ?장마?에서 선보였던 사건해결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천점바구 일행과 국방군 일행이 맞부딪쳤다가 서로 동시에 총을 내리고 지나치는 장면(10권 113쪽)도 바로 이런 민족화해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화해의 주역으로 염상구를 점지한 것은 탁월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또한 순결한 인물도 아닌, 살기 위해 악행도 서슴치 않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염상구는 ‘민중적 악한(惡漢)’이라고나 부를 수 있을 테니까. 관념이 아닌 현실 속의 민중이란 순박과 저항의 결정체가 아니라, 오히려 염상구적 속성을 다소간에 지니고 있는 존재일 테니까.

- 한만수(문학평론가, 순천대 국어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