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 2구, 현재의 신덕리에서 아버지 한용진(韓瑢鎭), 어머니 박귀심(朴貴心) 사이에서 십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남. 위로 누님 둘과 형 하나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 셋과 여동생 셋이 있음.

 
 

  초등학교 6학년 때 6.25 전쟁을 겪음. 회진 모퉁이의 교통호 파기 울력과 대덕 지서 토치카 쌓기 울력에 동원됨. 이때 경험한 것들이 훗날 소설로 승화됨.

 
 

  아버지, 어머니가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일을 하게 하려고 했지만 울고불고 억지를 써서 장흥중학교에 입학.

 
 

  중학교를 졸업하고 장흥고등학교에 입학.

 
 

  교지 《억불》 창간에 참여. 문학적인 열정병이 듦. 소설 쓰기를 시작함. 2학기부터 학과공부보다 문학공부에 열을 올리며 시를 공부함.

 
 

  진학을 포기한 채 졸업시험만 치르고, 4기분 등록금 바치기를 거부하며 그것으로 한글학회편 <우리말 큰사전>과 소설책 몇 권을 사 들고 귀향.

 
 

  영산포 오유권 선생을 만나 창작의 방법을 배움. 《사상계》 정기구독. 실존주의 열풍에 휘말림. 방학 때 귀향한 이상수와 '부조리와 불안과 고독과 자살'에 대하여 논박. 기독교 신앙에 빠져든 친구 황의신과 무신론자를 자처하며 토론에 열을 올림.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때문에 늘 소나기술 속에 빠지곤 함.

 
 

  독학으로 중학교 준교사 국어과 시험을 치렀으나 실패. 당근 재배와 닭 기르기에도 실패. 거듭된 실패 끝에 바다에서의 절망과 허무를 익힘. 아버지가 불구의 몸으로 자유당원 노릇을 함. 소설 쓰기에 몰두하는 아들을 무시하는 아버지와 늘 다툼.

 


<자료 : 한승원의 삶과 문학, 문이당, 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