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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유적 영각사 - 문태수 체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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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269회 작성일 11-09-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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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각사 - 문태수 체포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1047 - 전통사찰 제55호)

문태수 의병장이 체포된 곳

문태수(文泰洙, 1880~1913)는 한말의 의병장으로 안의 태생이다. 본명은 태현(泰鉉)이며 태서(泰西), 태서(泰瑞)라고도 한다. 주로 무주 덕유산을 근거로 삼남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1907년 12월 각도 의병부대가 서울을 총공격하려고 할 때 호남군 100명을 이끌고 참가하여 13도연합 의병부대 중 호남창의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총대장인 대한관동창의장 이인영(李麟榮)이 부친상 때문에 귀향하면서 서울진격계획이 좌절되자 무주로 돌아왔다. 1908년 2월 무주주재소를 습격하다가 붙잡혔으나 탈출했다. 그 후 장수·남원을 무대로 활동하였고, 경부선 이원역 습격·방화 등의 활동을 계속했다. 11월 이후에는 무주군을 근거로 하여 금산·영동·옥천·상주·청주·보은 등지에서 활동했다. 1910년 서울로 진격하고자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다시 덕유산으로 돌아와 재기를 꾀하던 중 1911년 8월 붙잡혔다. 대구감옥에서 서울로 옮겨진 뒤 1913년 2월 옥중에서 자결했다.

문태수의 체포와 관련된 자료들은 대체로 해방 이후 서술된 2차 사료들이고, 1차 문헌사료는 1911년 10월 27일자의 기사 뿐이다. 이 기사는 문태수가 토벌대의 수색이 엄중함에 따라 1911년 8월 안의군 서상면 영탑동 영각사에 잠복해 있다가 면장이 면민들을 시켜 포박케하여 체포하였다는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2차 사료들은 서상면장에 의해 포섭된 죽마고우인 임종두와 조한기가 문태수를 유인하여 조산마을 주막에서 술을 마셔 취하게 한 후 체포하였다는 기사이다. 무려 40년의 차이가 있으므로, 사실 관계를 따질 때는 1차 사료를 신뢰하는 것이 좋겠다.

현재, 영각사는 한국전쟁 시 화재로 멸실된 것을 이후 재건축하였으며, 규모가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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