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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유적 석상용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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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339회 작성일 11-09-2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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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용 집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313)

1907년 말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장 석상용이 살던 곳

석상용(石祥龍, 1870~1920)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태생의 한말 의병장으로, 지리산 일대의 화전민들을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주변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양한규(梁漢奎), 고제량(高濟亮), 문태수(文太洙) 등과 제휴하여 함양, 산청, 남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의 별명은 비호장군으로, 일본군마저 공포에 떨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실상사전투와 지리산 쑥밭재, 벽소령 및 삼성재전투 등이 있다.

실상사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석상용은 1908년 4월 29일 50여 명의 병력으로 이들을 습격하였다가 접전 끝에 노루목으로 퇴각하였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5월 1일 마천면 도마리 서당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집단학살하려 하였으나, 면장 노지현의 설득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석상용 의병부대는 1907년 말부터 5년간 지리산을 은신처로 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지만, 1912년 석상용이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해체되었다. 이 일로 석상용은 5년간의 수형생활을 했고, 출옥 후 병마에 시달리다 1920년 10월 26일 사망하였다. 1983년 대통령표창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각각 추서되었다.

석상용이 살던 집은 현재 멸실되어 찾아 볼 수 없고, 그 터에 다른 집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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