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방한상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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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상 집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572)
대구에서 진우연맹을 결성하여 활동한 방한상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
방한상(方漢相, 1900~1970)은 1900년 8월 23일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분덕마을에서 방규진(方圭鎭)과 인동 장씨의 일남 일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만취(晩翠)이며, 흑전(黑田)이라고도 하는데, 후자는 진우연맹(眞友聯盟)의 동지 간 사용한 이름이다.
방한상은 1923년 5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대구청년회 간사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북풍회·화요회 등의 사회주의계열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사상에 심취한 그는 사회주의계열과의 공동투쟁에 회의를 느끼고 먼저 무정부주의 동지들의 독자적 이념연마와 결속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여, 1925년 9월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정명준(鄭命俊)·서학이(徐學伊)·마명(馬鳴)·안달득(安達得)·서동성(徐東星)·하종진(河鐘璡)·김동석(金東碩) 등 과 무정부주의사상 연구단체인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진우연맹은 무정부주의단체로, 항일운동을 위해 일제의 주요 관서 파괴와 그 수뇌부 암살을 계획하였다. 이의 실행을 위해 1925년 10월 파괴단을 조직하였고 상해의 유림(柳林)을 통해 폭탄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926년 7월 연맹원이 모두 검거됨으로써, 거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방한상은 1928년 5년형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이상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3년에 대통령표창을,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지붕이 초가였고 축대가 흙이었던 것이 기와와 돌로 바뀌었을 뿐, 집의 골격은 방한상의 거주 당시와 동일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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