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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하승현 (河升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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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11-09-2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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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현 (河升鉉)

우리민족에 대한 일본의 강압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이어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라고 하는 한일합방의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되자 수많은 열사, 의사, 지사등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은채 민족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다.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돌연 승하하자 항간의 민심은 일본을 의심하였고 국장일이 3. 3일로 정하여지자, 국장일 이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 하기 위하여 3. 1일을 기하여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을 외치는 함성이 터진 것이다. 이날을 정점으로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우리 함양에도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3. 27일 함양 장날 오후 3시를 기하여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들자 의거를 주도하였던 정순길, 윤보현, 정순귀, 노경식등은 1교 다리옆(구장터) 에서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를 선창하였고 일본군 헌병에게 주동인물 4명은 체포되었다.

1919. 4. 2일 함양 장날 병곡면 사람 김한익(金漢益)이 주도한 함양읍 만세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긴급 출동한 헌병들에게 김한익이 붙잡혀 가게되자 하승현이 군중들을 데리고 노도와 같이 뒤를따라 헌병분견소를 포위하고 석방을 요구하였다

분함을 찾지 못한 하승현이 군중 대열에서 뛰어나와 석방을 요구하며 달려들자 일본 헌병은 총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하승현의 아버지 하재연과 숙부 하재익이 헌병에게 달려들자 총격을 가하여 역시 순국하였다.

병곡면민은 하승현 선생의 순절을 기리는 뜻에서 1953년 면장의 발의와 군수의 동의로 기념비를 상림 위쪽 뇌계천 도로변에 세웠고 군내의 뜻잇는 분들이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 솔숲에 사적지를 만들었으며 1967년에는 상림에 의거 기념비를 군에서 건립하였고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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