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하맹보 (河孟寶) : 1531~1593
페이지 정보
본문
하맹보 (河孟寶) : 1531~1593
유형 | 인물 | 이칭별칭 | 자 대재(大哉), 호 우계(愚溪) |
시대 | 조선 | 출생-사망 | 1513 (중종 8) - 1593 (선조 26) |
성격 | 문신 | 출신지 | 경상남도 함양 |
본관 | 진주 |
공의 자는 대재(大哉), 호는 우계(愚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며 하활 의 아들로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는데 우계 선생이 살았다고 하여 지금도 도천마을을 우동(愚洞)이라고도 부른다. 어릴적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노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의리가 깊었고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상중에 시묘하면서 죽만 먹었는데 때로는 제물이 없어서 걱정을 하니 산노루가 스스로 와서 제물이 되어주었다.
노진 선생이 말하기를 '선비의 풍습을 바르게하고 도를 진흥 시킬자는 오직 이 한사람 뿐이다'라고 하였을 정도이다 모친 상을 당하였을때도 부친상과 꼭 같은 절차로 극진히 모셨으며 예경을 연구하여 『상제초례』라는 저서를 남겼다. 선산 밑에 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아 배우러 오는 자들이 많았다
임진왜란때 아들과 손자를 보내어 종사케 하였으니 후일 선조대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공신록에 기록토록 하였다. 1616년(광해8)에 효로써 명정하였고 1701년(숙종27)에 구천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병곡면 도천리 마을 앞에 정려가 있다.
- 이전글하승현 (河升鉉) 11.09.21
- 다음글표연말 (表沿沫, ?~1498) 11.09.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