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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유호인(兪好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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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455회 작성일 11-09-21 22:44

본문

유호인(兪好仁, 1445~1494)

유형

인물

이칭별칭

자 극기(克己), 호 임계(林溪), 뇌계(㵢溪)

시대

조선

출생-사망

1445년 ~ 1494년

성격

문신, 문장가

출신지

경상남도 함양군

본관

고령(高靈)

저서(작품)

유호인시고

조선 전기의 문인.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시 ·문 ·서에 뛰어나 당대 3절(絶)이라 불리었고 성종으로부터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4대 학파 중 사림파에 속하였다.

호는 뇌계(뇌溪)요 관향은 기계요 1445년(세종 27)에 음(蔭)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여 학문의 이해가 빨랐고 성리학의 종조 김종직의 문하에서 심오한 학문을 연구하였다.

1462년(세조 8) 생원에 합격한 뒤 김종직(金宗直)에게 사사하였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봉상시 부봉사(奉常寺副奉事)를 거쳐 1478년 왕의 명으로 호당에서 독서하면서 필력을 키워나갔다. 시로서 성종에게 후하게 대우 받는바 되어 항상 글을 지어 올리라는 명을 받았다. 1480년에 거창현감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지내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일찍이 휴가를 얻어 돌아가 어머니를 뵐 때 “북망군신격 남래모자동(北望君臣隔 南來母子同)”이란 시를 썼다. 선생은 시문과 필력이 뛰어나 당대의 삼절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51494년 장령(掌令)을 거쳐 합천(陜川)군수로 재직 중 병사하였다. 시(詩) ·문(文) ·서(書)에 뛰어나 당대 3절(絶)이라 불리었고 성종으로부터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당시 4대 학파 중 사림파(士林派)에 속하였다. 장수(長水)의 창계서원(蒼溪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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