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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설화 원님과 호차(虎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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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11-08-0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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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과 호차(虎茶)





(지리산에 차나무를 기르게 한 김종직)
초엽 따서 상감님께 바치고
중엽 따서 부모님께 드리고
말엽 따서 남편에게 주고
늙은 잎은 차약 지어
봉지 봉지 담아 두고
우리 아이 배 아플 때
차약 먹여 병 고치고
무럭 무럭 자라나서
경상 감사 되어 주소.

어느 때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함양 지방에서 불렸던 차노래다.
함양지방은 영산 지리산을 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호차라는 차가 있어 함양지방의 자랑거리로 되어 있었다. 1471년 점필재 김종직(1431~1492)선생이 함양군수로 부임해 온 후부터 발견된 이 호차는 그 내력을 볼 때 약 50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점필재가 함양으로 올 당시 조정에서는 임금께 진상할 차를 바치게 하였던 것이다. 이곳 함양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차의 양이 배정되어 백성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하기에 관원들을 모아놓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필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함양이 어찌 차나무가 없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옛 문헌을 들쳐보며 차에 대한 기록을 훑어보았다. 삼국사기를 읽다가 지리산 부근에 차나무가 있다는 기록을 확인한 군수는 육방 관속을 동원하여 차나무가 있는 곳을 찾도록 명령하였다. 이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차나무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본 적은 없다고 하였다. 말은 들었으나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어디엔가 차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찾아보면 나올 것으로 확신을 갖고 군수는 모든 관원을 풀어 지리산 일대를 샅샅이 찾아보도록 엄한 분부를 내렸다.
그런지 보름이 지난 후 보고가 들어오기를 휴천의 엄천사 부근 어느 대나무 밭에서 야생차 몇 그루를 발견 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야생 차나무를 조심스럽게 캐어 차나무단지를 조성하도록 하고 특별 관리를 명했다. 그해 농사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재배의 성공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지리산 주변의 농민들은 거의 화전민이라 농토가 적은데다가 차나무를 심는 바람에 곡식을 심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군수는 화전민들에게 차나무를 심게 하고 세금으로 들어온 곡식을 대신 줌으로써 무난히 번식을 꾀하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경작을 시작한 5년 만에 나라에서 부과한 전량을 상납하고도 남아돌아 인근 고을에다 팔아넘길 수도 있었다. 그 이전에는 인근의 전라도 땅에서 양곡과 바꾸어 상납을 하였던 것이 차나무를 심어 재배함으로써 부과한 양을 충당하고도 남아돌게 된 것이다.
이 차와 연관된 이야기가 있다.
차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이 컸던 것만큼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도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지리산 차나무 밭에 찻잎을 따러 갔던 아이가 산속을 헤매다가 길을 잃었다. 이때 동리로 내려오던 호랑이가 아이를 업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호랑이 굴로 끌려간 아이는 기절을 했고 호랑이는 아이를 잡아먹으려다가 너무 어리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차마 해치기 안 되었던지 아이의 얼굴에다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도록 하고 함께 살아갈 양으로 아이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호랑이가 고마워서 찻잎을 따다가 호랑이에게 주니 호랑이는 찻잎을 맛있게 먹게 되었다. 찻잎을 먹다보니 아이와 호랑이는 친구가 되었고 차 맛에 취한 호랑이는 원기가 왕성하여 아이에게 온갖 고기를 다 구해다 주었다. 그 후 호랑이는 아이를 집으로 내려 보내고 스스로 지리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던 아이가 살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라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여차여차하여 이렇게 되었노라고 호랑이와의 관계를 설명하자 사람들은 호랑이가 즐겨 먹었으니 호랑이 호자를 넣어 ‘호차’라고 이름하여 부르게 하자고 하여 된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김종직 선생이 발굴하여 장려한 이 차나무에 대해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그 동안의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차를 만들어 성군의 장수를 빌고자 하는데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유종임을 알지 못하고 늦게야 지리산에서 차를 얻어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주니 내 마음 기쁘기 한이 없구나. 대밭 옆 거친 땅에 자라던 차나무는 새 땅에서 자라 꽃이 붉고 새 주둥이는 얼마나 오래 자랑했는가. 다만 백성들의 고통을 덜고자 하였나니 광주리에다 좁쌀을 담을 수야 없지 않은가?」
이 호차의 형태는 잘 알지 못하나 지리산 인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지금도 따서 끓여 먹기도 하고 선물도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호랑이가 즐겨 먹었다는데서 비롯된 이 호차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았던 우리 고장으로서는 능히 있을 법도 한 이야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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