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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설화 박문수와 과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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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11-08-0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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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와 과부 며느리





(뜬소문을 바로잡은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어사가 호남지방과 영남지방으로 암행의 길을 떠나는 전날 밤에 그를 전송하려고 온 친척되는 사람이
“경상도 함양 땅에 가면 과부된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이진사라는 자가 있는데...”
하는 말을 무심코 했다.
'며느리를 데리고 산다?' 박문수는 이 말이 며느리를 보통으로 데리고 산다는 뜻이 아님을 짐작하고 기억해 두었다. 며칠 후 박문수는 함양 땅에 들어섰다. 며느리를 데리고 산다는 이진사의 마을을 찾아서 폐의파립(弊衣破笠)의 과객 모양을 하고 들어갔다. 동구 밖에서
“이 마을에 이진사댁이 어디오?”
하고 물으니 어떤 사람이 괴이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이진사댁이란 무엇 말라빠진거요? 이가의 집은 저 외딴 대나무 숲속이오.”
하는 것이었다.
“왜 이진사라 하면 못씁니까?”
“제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놈이 무슨 진사요?”
역시 이진사와 며느리와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모양이었다. 또 다른 사람을 잡고 물어도 같은 대답이었다. 드디어 박문수는 이진사네 집까지 도달하였다. 마을은 시골 장터 같았으나 이 집만은 울창한 대나무, 밤나무 숲 속에 싸여 있었다. 집은 본채나 아래채가 상당히 큰 기와집이었다.
박문수가 주인을 찾아 들어가니 이진사는 뜰에서 며느리와 함께 멍석을 펴고 뽕잎을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며느리의 나이는 삼십이 못 된 듯한 아름다운 여자였고 이진사는 육십이 가까워 보이는 중노인으로서 속이야 어떻든지 아담스럽고 청조한 인물이었다.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노자도 떨어지고 몸도 피로해서 댁에 좀 머물게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하며 박문수가 청을 하자 이진사는 아무런 불편한 기색이 없이 손님을 아래채 사랑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저녁 대접이라든지 모든 것이 매우 친절했다. 더욱이 밤에 사랑에 나와서 상대해 주는 이진사의 행동을 보니 상스러운 티나 탐욕스런 기색이 없는 결백한 장자(長者)같았다. 글에도 포부가 깊고 시사에도 식견이 높았다. 그리고
“벼슬도 이루지 못하고 처자와 이별을 한 채 혼자 된 며느리와 살림을 하자니 신세가 오죽 하겠습니까?”
하고 탄식하는 빛이 처참해 보였다.
“뵙건대 퍽 고독하신 듯한데 동네 사람들과 상종을 하시며 어울려 지내시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진사의 표정은 굳어지면서
“그저 내가 불민하니까 어디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집니까?”
할 뿐 자세한 대답을 피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동정이나 더 살펴보리라 생각하고 박문수는 베개에 의지해 있는데 이진사는
“그럼 나는 내 처소로 가겠소이다. 피로하신데 일찍 주무시오.”
하며 이부자리를 펴 주고서 물러가는 것이었다. 그가 어느 방으로 가나하고 박문수가 문틈으로 내다보니 이진사는 위채에 달린 머리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박문수는 바야흐로 이진사와 그의 며느리와의 실제 행동을 정탐할 참이었다. 며느리가 어느 방에 거처하는지 문을 살그머니 열고 이 집의 내부구조를 살피었다. 안마당 저쪽 나무 틈으로 등불이 새어나오는 곳이 안방이며 시아버지가 자는 머리사랑에서 윗방들과 대청 하나를 건너서 멀직하게 떨어져 있는 그 안방이 며느리의 방임이 분명하였다. 박문수는 다시 문을 반쯤 닫고 그 문틈 옆에 앉아서 뚫어져라 윗채 머리사랑의 동정을 살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첫닭이 꼬끼요하고 울었다. 그러자 얼마 후에 과연 이진사가 사랑으로부터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옳다. 저자가 안방으로 들어 가려나보다.’
박문수는 이진사의 뒤라도 밟아 들어갈 듯이 긴장한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자 이진사는 일단 유건을 쓰고 담뱃대를 든 자태로 안마당으로 내려서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박문수는 저쪽 들창문 옆으로 옮겨가서 역시 문틈으로 내다보았다. 이진사는 울창한 뽕나무 사이로 자기 집 주위를 한바탕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사방에 인적이 없음을 살피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가겠지'
이렇게 추측한 박문수는 이 틈을 타서 재빨리 문을 열고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안방 쪽으로 갔다. 안방은 두 칸이나 되는 큰 방이었다. 박문수는 다시 그 방 앞마루 밑으로 들어가 엎드려서 숨결을 죽이고 엿보고 있었다. 과연 이진사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서 안방 마루 아래 댓돌 위에까지 올라섰다. 그리고는 ‘에헴 에헴’ 하고 가벼운 기침을 두 번 했다. 그래도 며느리 방에서는 아무 동정이 없었다. 시아버지는 다시 담뱃대를 가지고 똑! 똑! 마루를 두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에 안방 문이 열리며 술상이 마루로 나오는 것이다. 이진사는 술을 두어 잔 따라 마시고는 애기는 잘 자고 있느냐,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향해 나가는 것이었다. 박문수는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자기도 객실로 나왔다. 나와서도 미진해서 방문을 반쯤 열고 위채 머리사랑이랑 안방의 동정을 계속 살피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부지런한 모습만이 눈에 띄었다. 시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서 뽕잎을 따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또 안방과 대청사이를 들락날락하면서 무엇을 하는지 뚝딱거리기도 하고 날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안방에서 누에를 기르는 모양이지?'
하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이튿날 밤, 박문수는 계속해서 이 집에 묵어서 이진사와 며느리의 행동을 살폈으나 여전히 전날 밤과 같을 뿐 아무런 이상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들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밤낮으로 누에를 기르기 위해서 안방에 드나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필 어두운 새벽에 며느리의 방에 가서 술을 마시는 건 무슨 뜻인고? 박문수는 최후의 실험단계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다.
나흘째 되는 날 밤, 박문수는 이진사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장을 하였다. 행장 속에 예비했던 유건이랑 긴 담뱃대랑 얼굴에 수염까지 붙였다.
'이만하면 얼른 알아보지 못하겠지?'
하고 혼자 생각한 다음 시아버지는 첫닭이 울고 난 후에 일어나니 나는 첫닭이 울기 전에 들어가 보리라하고 예정시각을 기다렸다. 드디어 밤이 깊었다. 박문수는 안방 마루 앞까지 가서
“얘야! 얘야!”
하며 가벼운 기침을 했다. 그런 다음에 얼마 있다가 담뱃대로 마룻바닥을 똑! 똑! 두드렸다. 그리고서는 혹시라도 며느리에게 정면으로 얼굴이 보일까 겁이 나서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안마당을 향하여 수염을 쓰다듬은 다음 왼손으로 볼과 턱배기 언저리를 가리었다. 그러자 전날 밤과 같이 방문이 열리며 며느리의 술상이 나오는 참이었다. 순간 박문수는 빠르게 손을 뻗쳐서 그 여인의 손목을 꽉 잡았다. 만일 이 때에 무슨 사사로운 마음이 있는 여인이라면 내밀던 술상이 조용히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술상은 왈가닥 마루에 떨어졌다. 동시에 여인은 형용할 수 없는 가느다란 비명을 올리면서 손을 뿌리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망녕이 드실 때도 아닌데 이 일을 어쩌나’
염려하던 여인은 마침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박문수는 마음속으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객실로 몰래 나왔다. 그러나 다음에 일어날 풍파야말로 박문수에게는 더욱 좋은 재료가 되었다. 첫닭이 '꼬끼오'하고 울자 이진사가 여전히 하던 행동대로 집 안팎을 휘돌아서는 안방 마루 앞으로 올라가더니 에헴! 에헴! 하고 기침을 하다가 담뱃대로 마루를 똑! 똑! 두들기는 것이었다. 이 때 엿보고 있던 박문수는 장차 일어날 사태를 예측하고 긴장이 되었다. 시아버지 앞에 술상이 나오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방안에선 흑흑 흐느껴 우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허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로구나.’
시아버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얘야 왜 우느냐?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하고 물었지만 며느리는 종시 문을 굳게 닫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이진사는 기운이 하나도 없이 밖으로 나갔으며 날이 새자 박문수와 서로 대하게 되었다. 며느리는 일어나 밥도 짓지 않고 누워서 우는 모양이었다. 이진사는 손님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지 못하게 된 것을 민망해하며 들락날락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박문수를 대했다. 박문수는 뻔히 내막을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고는
“혹시 자부께서 병이 나셨나요?”
하고 물었다. 이진사는
“그런 모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박문수는 며느님이 불편하시게 된 곡절에 대해서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몇 가지 사정 이야기를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첫째, 내가 댁을 찾아오던 길에 동네 사람들의 공론을 들었는데 주인장이 며느님의 방에 깊은 밤중에 드나드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법도 한 일이지요. 이미 짐작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하면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가운이 불행해서 처자식을 모두 잃고 혼자 된 젊은 며느리와 이 커다란 집구석에서 지내자니 내가 사랑에서만 있으면 널찍한 안방에서 언제 어떤 일이 생길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더구나 이 위험한 동네에서 말입니다. 닭이 울 즈음에 밤중마다 집 안채를 한 번 휘도는 것은 집안이 크고 허전한 만큼 도둑도 방비해야겠고 더욱이 혼자 거처하는 과부 며느리를 노리고 담을 넘어서 침입하려는 부랑자를 방비하기 위한 것이고 며느리 방 마루 앞에 가서 한 번 씩 기침을 하며 앉았다 나오는 이유도 그런 까닭입니다. 겸해서 혼자 자기가 무섭고 두려움에 빠져 있을 며느리의 심경을 든든하게 엄호해 주자는 것입니다. 술상을 받아 마시는 것은 며느리 방에 애기누에가 가득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녁 누에를 보살피다가 고단해서 쓰러진 며느리에게 누에의 밥을 주게 하기 위해서 내가 첫닭 소리만 나면 들어가서 깨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루를 두들기고 기침소리를 낼 뿐 아니라 원래 누에를 기르는 집에 술 내음새를 피우는 것이 소독도 되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전 해장 위로도 될 겸 양잠에도 좋은 방도라고 생각한 까닭에 술상을 차려오게 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러한 골자의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진사는 끝으로 한마디를 덧붙여서 한탄하기를
“도대체 나 자신의 부덕으로 해서 마을 사람과 한편이 못되고 늘 고립해 지내는 죄인이요, 지방 사람들은 호협하여 놀기도 잘 하고 장사도 잘 하는데 나라는 사람은 아녀자처럼 들어앉아서 꼴사납게 양잠이나 과원을 돌보고 책이나 들여다보곤 할 뿐이니 가깝게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계집도 자식도 없는 죄 많은 신세가 어디 활발해 질 수가 있어야죠”
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정을 듣고 난 박문수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이날 오후 뜻밖에도 이 마을에 어사출도가 있었다. 묻지 않아도 박문수 어사가 전례에 없는 농촌 동네에서 출도를 한 것이다. 어사는 바로 이진사의 집에 좌처를 차리고 마패를 전하자 미리부터 약속해 두었던 서리 역졸이 전부 모여들었다. 이 고을 원님과 아전들까지 쏟아져 나와서 굴복대령을 하였다. 그러자 어사또는 우선 이 마을의 향장이니 존위니 공원, 좌상이니 뉘집 뉘집의 문장이니 선생이니 하는 인물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게 하고, 또는 이 시골의 호협주색하는 부랑패류랑 쓸데없는 남의 일을 비방하며 공론하기 좋아하는 무리들끼리 일일이 조사해 오도록 명령을 했다. 다음에는 동네의 노소남녀 양민들까지도 전부 불러들였다. 그리고서 어사또는 추상같은 위엄으로
“여봐라 너희 마을에서 일구여취로 이진사댁을 무슨 추행이나 있는 양반처럼 빼돌리는 모양인데 누가 그 추행을 실지로 보고 입증할 사람 있느냐?”
하고 엄명을 내리니 아무도 실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사또는 다시
“이 어리석은 백성 같은 이들”
하고 소리를 높인 다음 차츰 화평스런 얼굴로 일장의 훈시를 했다.
“남의 일을 근거도 알지 못하면서 추측만으로 중구난방 떠들고 공론비평해서는 못쓴다. 이진사댁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본관이 명백히 사실하고 난 바이다. 도리어 너희들 무리와 영리생활에 흥청거리며 남의 공론이나 일삼는 백성이야말로 이진사댁 같은 고독하고 학문하는 중에도 사업과 살림 경제에 근면한 면을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는 시골의 모르는 백성일수록 그 지방에 포부 있는 선비를 잘 본받아 가며 지도를 청할 일이지 외톨로 고립을 시켜서는 못 쓴다”
대강 이와 같은 요지의 훈계를 했다. 그러고서 어사는 또 이진사의 며느리를 불러서
“어젯밤에 부인의 손목을 잡은 사람은 암행의 책임을 수행키 위한 이 사람의 행동이었느니라”
하고 사실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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